비종교적 신념 병역거부도…대법 "진정성 있다면 무죄"

입력 2021-02-25 17:53   수정 2021-03-05 18:39


‘여호와의 증인’ 등 특정 종교가 아닌, ‘비(非)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예비군)을 거부한 사람에게 대법원이 첫 무죄 판단을 내렸다. 개인적·윤리적 신념으로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했다고 하더라도 신념의 진정성, 당사자의 과거 행적 및 폭력 전과 등에 따라 대법원이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리긴 했지만, 일단 비종교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첫 사례다.
‘진정한 양심’ 여부에 따라 유·무죄

대법원 제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5일 자신의 도덕적·철학적 신념으로 16회에 걸쳐 예비군 훈련에 불참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둬 어려서부터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지녔다고 진술했다. 또 미군이 기관총을 난사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동영상을 본 뒤 큰 충격을 받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A씨는 가족의 권유로 군에 입대해서도 군사훈련을 받지 않는 회관 관리병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이후 예비군 훈련을 일절 거부했다.

A씨는 예비군법위반죄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개인적인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할 수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 최초의 판례다. 대법원은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병역법이 규정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철학적 신념에 의한 경우라도 그것이 진정한 양심에 따른 거부라면 정당하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201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다’면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반면 역시 비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해 재판에 넘겨진 B씨와 C씨는 이날 각각 1년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대법은 이들이 주장하는 신념이 진실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전쟁을 위해 총을 들 수 없다고 주장한 B씨와 C씨에 대해선 “B씨의 병역거부는 비폭력주의보다는 권위주의적 군대문화에 대한 반감에 기초하고 있다”며 “병역거부 이전에 평화, 반전 등 분야에서 활동한 구체적인 내역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C씨는 모든 전쟁과 물리력 행사에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 스스로도 이에 가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과거 집회에 참가해 경찰관을 가방으로 내려쳐 폭행한 사실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념’의 범위 확대 우려
법조계에서는 개인적인 신념도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이라면 군복무 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첫 판례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소수의 목소리와 다양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판결이라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양심’을 판단하는 잣대가 불분명하고, 동시에 ‘신념’의 범위가 무한정 확대되면서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에서 규정하는 ‘정당한 사유’와 같은 불확정하고 모호한 개념을 얼마나 객관화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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